2 - 로비는 실력인가?
이 글은 건축 설계공모 로비 공론화를 위한 오픈채팅방에서의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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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참여자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심사위원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공정하게 심사한 위원 리스트도 함께 정리하여, 앞으로 공모를 접수할 때 ‘지뢰 위원’을 피하고 그래도 믿을 만한 판을 골라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다른 참여자는 요즘 스코어러 같은 사이트에서 심사위원 이력과, 특정 심사위원이 참여한 공모에서 어떤 업체들이 얼마나 자주 당선되었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 “누구에게 몇 표를 줬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이상하게 당선 빈도가 높은 업체가 반복 등장한다면 의심할 만한 정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의는 곧바로 **“위원이 더 문제냐, 로비하는 사무실이 더 문제냐”**라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한 참여자는 “솔직히 위원보다 로비하는 사무실이 진짜 박살났으면 좋겠다. 굶어 죽고, 징계가 아니라 자격 박탈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위원은 징계를 받든 말든, 애초에 ‘주는 놈’이 없으면 로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다른 참여자도 동의하며, 로비가 적발되면 심사위원뿐 아니라 해당 사무실의 일정 기간 공모 참여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탰다.
이 과정에서 로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 논쟁이 격렬하게 펼쳐졌다. 어떤 참여자는 “로비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에 가깝고,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관행이라면 차라리 로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자 곧바로 “로비가 왜 실력이냐”, “법적으로 불법인 것을 두고 실력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강한 반발이 이어졌다. 명절에 발주처에 소소한 선물을 보내는 예의와, 공모전에서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이 오가는 금품 로비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이 논쟁은 “세상에 존재하는 관행”과 “허용해서는 안 될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실언을 했다고 느낀 참여자는 사과의 뜻을 밝히며, 자신이 말하고자 한 것은 “현실 세계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체감이었지, 불법 로비를 정당화하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방장은 “이 방의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로비를 옹호하거나 정당화하는 뉘앙스의 발언은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며, 이곳은 어디까지나 사례를 수집하고 공론화하려는 공간이라고 다시 한 번 방향을 확인했다.
로비를 실제로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몇몇 참여자는 “결국 답은 신고와 처벌”이라고 잘라 말했다. 2등, 3등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발에 나서서 1등이 탈락하고, 포기하고 있던 3등이 당선된 사례(특정 교육청 공모)가 소개되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로 발주처와 심사위원들이 한동안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는 씁쓸한 후일담도 뒤따랐다. 이 경험에서 도출된 결론은 분명했다. “징계가 세야 한다. 면허 박탈이든 징역형이든, 본보기 처벌이 반복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야 로비가 줄어든다.”
한편, 로비 리스트·블랙리스트를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문제에 대해선 법적 리스크에 대한 인식도 분명히 드러났다. “로비하는 설계사무실 리스트나 로비받는 교수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면 불법인가?”라는 질문에, 일부는 “사실이라면 문제없지 않냐”고 직관적으로 반응했지만, 곧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방을 운영하는 측에서는 공식 공간에서 특정 사무소·개인을 실명으로 지목하는 방식은 우선 지양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한 참여자는 “이미 암암리에 버전업 되는 리스트가 있다”며, 로비 의심 리스트가 비공식적으로 ‘공모를 거르는 용도’로 공유되고 있다는 소문을 전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로 확장되었다. 한 참여자는 “이 문제를 건축사 집단 내부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공공건축은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것인데, 시민사회의 개입이 필수다”라고 말했다. 현 상태에서는 설계공모 사이트, 프로젝트서울 같은 채널을 아무리 열어놔도, 일반 시민들은 이 세계를 아예 모른 채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피디수첩 같은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한 번 파헤치지 않으면, 일반 시민이 관심을 갖기 어렵다”고 진단하며, 언론과의 연결 가능성도 언급했다.
논의의 말미에는, 로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 설계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공공 설계비를 산정하기 위한 공사비 책정 자체가 엉망이라는 지적, 사업비를 제대로 책정하면 설계비와 공공건축 퀄리티가 함께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 민간사업에서는 애초에 책정되는 설계비 수준이 낮은 데다, 촉박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구조가 겹치면서 사무소가 병들고 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 민간 설계비가 관급보다 싸게 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토로, 그러나 관급조차 다양한 보고·협의·행정업무까지 고려하면 “실제로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라는 반론이 뒤섞이며, 한 참여자는 결국 “건축설계 전체의 설계비 인상이 제1번 숙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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