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심사위원이 직업인 교수들

이 글은 건축 설계공모 로비 공론화를 위한 오픈채팅방에서의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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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여자가 철도 관련 공기업에서 발주하는 설계공모의 분위기를 묻자, 여러 사람들은 “어떤 공모든 심사위원에 따라 판이 달라진다”는 말을 반복했다. 두 명 이상이 특정 업체를 밀어주는 상황이 형성되면, 심사 과정 전반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공모안 제출 이후에 심사위원을 선정하거나, 예비 심사위원을 넉넉히 공개해 두고 제출 마감 후 무작위 추첨으로 실제 심사위원을 뽑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편, 일부 참여자는 “영업이 안 되면 공모를 하지 말아야 한다”, “영업이 전부에 가깝다”는 식의 발언을 하면서, 실격 사유가 있어도, 도면 일부를 복사해도 통과되는 사례가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특정 철도·인프라 공기업 공모에 대해 “몇 개 업체가 나눠 먹는 판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하며, 평가위원 선정 절차의 불투명성,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 심사, 실격 사유에 대한 이의 제기 불수용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참여자는, 이런 구조가 철도 분야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공공건축가와 일부 설계사무소들이 얽힌 보다 넓은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대화는 곧 학교 설계공모와 교육청 공모로 이어졌다. 몇몇 참여자는 “학교 설계공모도 로비가 기본”이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며, 교육청 공모가 로비와 인맥에 크게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교육청 간부가 퇴직을 앞두고 설계사무소, 자재회사, 적산사무소 등으로 진출하거나, 설계사와 공동으로 사무소를 차리는 관행이 있다는 경험담도 나왔다. 일부 참여자는 “공모의 90%는 로비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현상 경쟁이 과열되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공모에서 로비가 전제처럼 붙는다”고 체감을 공유했다.

로비 비용에 관한 구체적인 수치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한 참여자는 설계비의 2~3%를 로비 비용으로 책정하는 관행이 있다고 들었다고 했고, 다른 참여자는 요즘에는 5% 이상까지 이야기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설계비 10억 원 규모 공모에서 수천만 원이 심사위원과 관련 인물들에게 배분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오갔다. 또 어떤 참여자는 과거 대형 턴키 사업에서 “위원 5명 중 1명은 핵심, 나머지 3명은 같이 설득하는 공식”이 있었다는 식의 일화를 전했다. 소규모 설계사무소 입장에서는 이런 규모의 자금을 준비하기 어렵다는 토로도 함께 나왔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 참여자는 “심사위원 수당 자체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전문성을 가진 심사위원들이 설계안을 사전에 검토하고, 현장·발주처 미팅 등을 거쳐 평가하는 데 비해 지금의 심사비가 지나치게 적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공모에서는 정당한 보상을 통해 불투명한 금전 거래를 줄일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설계비 수억~수십억 규모 이상의 공모에서는 심사비 인상만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함께 제시됐다.

한 참여자는 자재업체로부터 ‘페이백’을 받은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로비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자기도 구조 안에 얽혀 있다는 점에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른 참여자들은 자재 리베이트와 공모 로비는 성격이 다르다는 의견, 공정성을 다루는 자리에서 뒷돈 수령 경험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 등을 제기했다. 당사자는 이후 “돈이 개입되면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꺼낸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앞으로는 이런 관행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일부 지역 건축사들 사이에서 “공정한 설계공모 참여”를 조건으로 동아리·모임 가입을 받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도 공유되었다. 한 참여자는 젊은 건축사들을 중심으로 로비 관행에 비판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고, 이런 집단이 점차 판을 바꿔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현재의 고인물 세대가 바뀌지 않는 한 구조가 쉽게 달라지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도 함께 드러냈다.

이후 대화는 다시 심사위원 제도로 돌아왔다. 한 참여자는 “심사위원이 사실상 직업이 된 교수·강사들”의 명단을 만들어 공유하고, 이들이 참여하는 공모는 의도적으로 기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고가 없는 지역까지 심사위원으로 ‘원정’ 오는 사례, 공공건축가와 교수 인맥을 통해 공모가 나눠지는 구조, 로비가 어려운 사무소는 애초에 공모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 등을 언급했다. 어떤 경우에는 2~3등 상금을 노리고 로비 없이 참여하는 팀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참여자는 교육청 공모를 예로 들며, 특정 사무소가 당선된 공모의 심사위원 명단과, 해당 심사위원이 참여한 다른 공모의 결과를 여러 건 비교해 보면 일정한 ‘공통분모’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그 사무소가 참여하지 않은 공모에서는 같은 인물이 심사위원으로 들어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식의 경험담도 공유되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참여 횟수 제한과 관련된 제도 논의가 이어졌다. 한 참여자는 설계공모 운영지침(또는 유사한 기준)에 심사일 기준 연 12회 또는 월 2회를 초과해 심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으며, 이는 평가위원 제척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참여자는 “연 6회 정도로 더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또 다른 참여자는 현재처럼 지자체별로 따로 위원회를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통제가 어렵다며, 조달청 등 중앙 시스템에서 전국 심사위원 참여 횟수를 통합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부 공공기관과 지자체는 심의 결과를 통합 시스템에 공유하지 않아, 설계공모 관련 정보가 한데 모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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