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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동 양육친화주택 심사 보이콧의 이면: 공정한 심사 앞에 멈춰버린 공모판

기사 원문 : 설계공모 초유의 ‘심사 불성립’…무슨 일?

설계 공고 : 당산동 양육친화주택 설계공모

최근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설계공모 초유의 ‘심사 불성립’…무슨 일?」 설계비 50억 원 규모의 당산동 양육친화주택 설계공모가 당초 69개업체가 참가등록을 하였으나, 막판 업체들의 불참으로 당선작 없이 끝났다는 내용이다.

기사의 논조를 살펴보면, 마치 이번 사태의 원인이 ‘심사의 공정성’에 있는 것처럼, 더 정확히는 심사위원 구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기사 말미에는 새로 도입된 심사위원 구성 제도에 대해 한 ‘중견’ 업체의 임원이 불평하는 인터뷰도 실려 있다. 요지는 이렇다.
관련 분야 교수진이 심사위원을 맡지 않고 민간 건축사들이 심사위원을 맡아서, 심사 방향성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단 불참’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다.

정말 그랬을까. 궁금해서 이번 심사위원 구성을 직접 찾아보았다. 결과는 기사에서 풍기는 인상과는 정반대였다. 이번 심사에는 비교적 심사에 공정을 기하고 세심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심사위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심사위원들 상당수는 로비를 받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과거 로비 시도를 한 업체를 실제로 고발한 이력까지 가진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구성이라면, 요즘 기준으로는 80개 업체 이상이 작품을 제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설계비 50억 규모의 큰 사업이다 보니, 중소업체들은 늘 그렇듯 이번에도 ‘뻔한 판’으로 돌아갈 것이라 예상하고 애초에 등록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평소 하던 대로’ 하려던 업체들이 대거 등록을 마쳤고, 약 2개월 뒤 공개된 심사위원 명단을 보니 웬걸, 구도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평소처럼 ‘심사 방향’을 미리 맞추고, ‘누가 심사위원인지’를 계산하며 들어오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심사위원 구성은 극도로 불편한 신호였을 것이다. 쉽게 말해, “이번에는 평소 방식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메시지로 읽혔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가, 막판 단체 불참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결국 이들은 ‘심사를 공정하게 할까 봐’ 아예 사업에 차질을 주는 쪽을 택한 셈이다.

과정은 안 봐도 뻔하다. 애초에 참가 등록 업체 수가 적었다면 발주처는 재공고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모에는 무려 69개 업체가 참가 등록을 해놓고, 막판까지 버티다가 제출 직전에 단체로 작품을 내지 않았다. 공고일부터 당선작 발표 예정일까지 잡혀 있던 사업 일정이 그대로 3개월가량 통째로 날아갔다. 이 정도면 단순한 ‘불참’이 아니라, 노골적인 ‘보이콧’에 가깝다.

그래도 몇 군데라도 제출을 했다면, 적어도 한 곳은 설계권을 가져갔을 것이다. 그런데 아예 아무도 내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리스크 회피 이상으로 어떤 악의적인 의도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공모를 통해 좋은 설계를 뽑는 것보다, 심사 구조를 흔들어 제자리로 되돌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기사에서는 공모 지침의 세부 조항까지 문제 삼으며, 마치 설계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조항 때문에 업계가 참여를 꺼린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언제부터 그런 조항을 그렇게까지 세심하게 따져가며 공공성을 걱정해 왔던가. 새롭게 도입된 심사위원 구성에 대하여 “심사제도의 업계 수용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업계”는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가. 공공건축 전체를 생각하는 건축계인가, 아니면 로비를 통해 이익을 얻어온 특정 업계인가. 기사에 적힌 “향후 사업 추진 동력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장은, “앞으로도 우리가 로비할 권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종류의 협박처럼 읽히기까지 한다.

당산동 양육친화주택 사업은 단순한 아파트 한 동을 짓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프로젝트의 개요를 살펴보면 ‘아이를 키우는 가구가 선호하는 중형 면적(59·84㎡) 중심의 총 380세대 주택’을 기본으로, 저층에는 서남권 상상나라, 서울형 키즈카페, 우리동네 키움센터, 장난감도서관, 어린이집 등 양육 인프라와 병원·학원 같은 민간 인프라를 함께 두어, 주거 문제와 돌봄 부담을 한 번에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저출산 시대에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공공 프로젝트다.

이 중요한 사업이, 몇몇 뻔뻔한 로비 세력 때문에 그대로 제동이 걸렸다. 한 번 일정이 미뤄진 사업은, 이후 어떤 변수에 휘말릴지 아무도 모른다. 예산이 줄어들 수도 있고, 사업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단순한 이권 챙기기를 넘어서, 시민들을 위한 공공사업의 향방까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주무르려는 이 로비 세력들을 우리는 이대로 놔둬도 되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새 심사제도 탓”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심사가 공정해지자 공모 자체를 멈춰버린 업계 구조를 직시하는 것이다.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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